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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2 달과 6펜스 - 천직과 같은 일은 있는 것일까? [고전 100권 프로젝트]

by 한량처럼_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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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난 그려야 해요.” 그는 되뇌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뛰어나지 않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구.”
“제가 왜 맹추입니까? 분명한 사실을 말하는 게 맹추란 말인가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어요.”

 

 

천직이란 있는 것일까?

 

 1월 1일 새해 친구에게 안부 연락이 왔다. 친구는 새로운 해 2024년의 설렘과 기대보다는 걱정과 고민을 털어냈다.

 

 "나는 내가 사진 관련 일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요리 쪽으로 직업을 바꾸려고 했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인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것도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서는 언제나 괴리가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 누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항상 가슴 뛰는 일을 찾으라고 말한다. 마치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직업을 잘못 찾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에서 직장인의 꿈은 은퇴이다. 필자 또한 경제적 자유와 함께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 아니겠는가. 자신이 적성에 맞고 이보다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마 과거에도 자신이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한 내적 갈등 속에 서머싯 몸도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폴 고갱이라는 인물의 스토리에서 어떠한 사람들이 천직과 같은 일을 하게 되는 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폴 고갱

 

 사실 필자는 폴 고갱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고흐를 좋아하기에 아를에서 함께 살았고, 그 당시 편지를 통해 그리 인성이 좋지는 못하다는 것을 유추할 뿐이다. 

 

 파리에 여행 갔을 때 그가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조차 큰 감명을 받지 못하였다. 어떻게 이런 그림이 명작인거지라는 의문만 머릿속에 남았다. 

 

 위의 그림을 보았던 것 같은데, 당시 생각은 '내가 그려도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였다. 책에서도 고갱의 그림에 대해 그 당시 아무도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그림은 듯하다.

 

 하지만 확실히 그의 삶의 스토리는 재미있다. 증권회사에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그림을 전업으로 한 것을 물론이고, 가족을 떠났으며, 타히티에서 그의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러한 큰 흐름을 각색하여 만든 책이 바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였다.


과한 각색? 그 당시 천재에 대한 이미지?

 소설이다 보니 당연히 이 책에도 각색이 많이 존재한다. 책에서는 그와 엮이는 주변인들이 모두 파멸의 길로 가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 속에서도 또 고갱은 그림에 미친 것처럼 그것에만 매진한다.

 

 아마 그 당시에 천재에 대한 이미지가 그랬던 것 같다. 사회성은 사라진 채 한 분야에 미쳐버린 이미지가 그 당시의 천재의 전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에 대해서 소설을 쓰다 보니 한 가지 문제점도 존재한다. 이게 정말 있는 스토리인지 각색된 얘기인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고갱에 대해서 잘 알면 괜찮으나 나처럼 잘 모르는 인물은 뭐가 사실이고 뭐가 각색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뭐가 사실이든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계속 '정말 고갱은 이런 인물이었어?'라는 생각이 맴돌며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실존하는 인물이 이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몰입하며 소설을 읽어나갔으니 말이다.


 

 이제는 소설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책이 나에게 뭘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는 그 세계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보고 들으며, 그 삶을 체험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달과 6펜스에서의 예술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만으로도 너무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기억에 남는 구절

#1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 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들의 자리를 내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옛 도시 니네베도 그들의 위업을 하늘 높이 쌓아 올렸을 때 새로운 복음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말하는 당사자에게는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 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늘 같은 원을 새롭게 돈다.

 

#2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신령한 힘을 어쩌다 한번 체험하고선 그것을 늘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돌팔이 의사처럼,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남용함으로써 힘을 읽고 마는 것이다.

 

#3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 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개인적인 평점 ( ★★★★ )

 책 자체는 정말 재미있다. 특히 중반부에 사건들이 몰아칠 때는 책을 손에서 놓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로 몰입해서 읽어나갔다. 하나 이상하게도 매력적인 인물이 내게는 없었다. 고갱의 역할인 찰스 스트릭랜드가 이상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설정한 것 같지만 나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또한 주변인물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 점이 아쉬웠다.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은 너무나 재미있었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매력. 그리고 몰아치다가 중후반부에 약간 힘이 빠지는 부분 때문에 이 번 책을 별점 4개로 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소설책을 잘 안 읽는 사람에게는 개츠비보다는 훨씬 추천할 만한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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