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방식에 대한 여러분의 적개심을 버리지 마시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모두 우리의 친구입니다. 인간에 맞서 싸우는 데엔 우리 동물들이 결코 인간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그를 정복하더라도 절대로 그의 악한 짓거리들을 모방해선 안 됩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집 안에 살아선 안 되며 침대에서 자도 안 되고 옷을 입거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돈을 만져서도 안 됩니다. 장사에 손 대서도 안 돼요. 인간의 모든 습관은 사악합니다. 무엇보다 동물은 동족을 폭압 해서는 안됩니다. 힘이 세건 약하건, 똑똑하건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네 가지 유형의 글쓰기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에세이에서 작가들은 네 가지 동기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순전한 이기심 :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하고 싶은 욕망
- 미학적 열정 :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픈 열망
- 역사적 충동 :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후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
- 정치적 목적 :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조지 오웰은 이 네 가지 동기 중 정치적 목적으로 동물농장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이는 사실 작가의 말을 듣지 않고 보더라도 책의 내용에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평소에 정치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정책들 하나하나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큰 정당 혹은 이념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책을 보면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었지만, 의외로 동물농장이라는 책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동물로 풍자한 사회주의

책의 시작은 메이저라는 늙은 돼지의 사회주의 선언과 같은 대사를 통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사회주의적인 메시지와 동물들과의 조합이 너무 찰떡이라서 책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메이너 농장만 해도 말 열두 마리, 암소 스무 마리, 양 수백 마리에게 상상 이상의 안락하고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계속 이 비참한 조건 속에 살아야 하는 겁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노동해서 생산한 것을 인간들이 몽땅 도둑질해 가기 때문입니다. 동무들, 우리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거기 있소. 한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대부분의 수확물은 동물의 힘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인간이 그 결과물을 다 차지한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사용하여 사회주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가 얼마나 적절하던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족했던 역사 지식

동물농장에서 말하는 혁명은 러시아 혁명이다. 물론 사회주의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소설 속 등장동물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인물 하나를 비유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바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이 하나의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재미 또한 있었다. 독재자 돼지의 이름은 나폴레옹으로 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구원자가 될 줄 알았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재를 비유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바로 위에 있는 북한의 현실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오히려 부족한 역사 지식은 책의 내용을 더 일반화된 현실을 바라보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식을 모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더라도, 소설은 독자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서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재미있었던 두 가지 포인트
책을 보면서 두 가지 재미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내용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복서라는 말의 생각이다.

복서라는 말은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졌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한다>라는 생각만을 가진 채 모든 행동을 한다. 언제나 노력과 근면은 사회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생각을 깊게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노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가를 느끼게 만든다.
살면서 이러한 상황을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고 열심히에만 몰입한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성적은 잘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일을 할 때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업무 효율은 어떠한가?
정말 노력과 근면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한 것일까? 필자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민과 생각을 통해서 노력이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두 번째는 동물들의 기억 왜곡이다.

책을 보며 사람들이 정말 동물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포인트가 한 가지 있다. 바로 동물들이 돼지들에 의해 자신의 기억들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이를 보며 역시 동물들은 멍청하구나 혹은 민중들은 선동당하기 쉽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의 기억 또한 쉽게 타자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이전에 읽었던 책 「스키너의 심리 상자 열기」를 보면,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된 사실이라고 한다.
즉 우리들도 이러한 기억 왜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다른 권위자의 말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억에 남는 구절
#1
동물들은 또 지금까지 그들이 믿고 있던 것과는 반대로, 스노볼이 <동물 영웅 일등 훈장>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건 <외양간 전투>가 끝난 다음 스노볼 자신이 퍼뜨린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훈장을 받기는커녕 전투 중에 보인 비겁한 행동 때문에 견책을 당했다는 얘기였다. 몇몇 동물들은 이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스퀼러는 그들이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동물들을 이내 설득할 수 있었다.
#2
하지만 한 때 스노볼이 동물들에게 불어넣었던 호사스러운 꿈 - 전기가 들어오는 축사 우리, 냉온수 시설, 주 3일 노동제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입에 오르지도 않았다. 이런 생각들은 동물주의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동물들의 참다운 행복은 열심히 일하고 근검한 절약 생활을 하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말하자면 농장은 그 자체로는 전보다 부유해졌으면서도 거기 사는 동물들은 하나도 더 잘살지 못하는 (물론 돼지와 개들은 빼고) 그런 농장이 된 것 같았다.
#3
「이젠 눈이 보이지 않는군,」 한참 만에 클로버가 말했다. 「젊었을 때도 난 저기 씌어 있는 글들을 읽지 못했어. 그런데 저 벽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일곱 계명이 그대로 있긴 있는 거니?」
벤자민은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이번 한 번만은 깨기로 하고 벽에 씌어 있는 글들을 클로버에게 읽어 주었다.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개인적인 평점 ( ★★★★★ )
오랜만에 별 다섯 개짜리 책이 나온 듯하다. 내가 기대했던 고전 소설은 이런 것이 아닐까. 굉장히 책의 서사에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
사실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어 책을 읽기 전에는 걱정도 했었다. 풍자적인 소설이 재미있을까, 혹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잘 쓰인 책은 독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누군가 고전 소설 입문하고 싶을 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라고 물어봤을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만한 소설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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