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수학은 상당히 직관적인 학문이더라구요. 전체를 보고 흐름을 파악하고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가를 분석하며 그걸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미국 아이들은 수학을 대체로 못해요. 하지만 수학 수업은 우리와 다르게 이뤄집니다. 예를 들면, 공식을 설명하고 객관식 답을 찾도록 가르치지 않고, 어떤 상황을 주고 어떻게 풀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궁리합니다.
한 아이가 “우리가 풀어야 하는 걸 x라고 두자.” 하면, 다른 아이가 “x로 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뭐지? 아는 걸 a와 b라고 할까?” 하고 생각을 나눠요. 이 과정이 수학이에요. 상황을 관찰하고 구조를 분석하고 그것에 요소들을 부여해서 관계를 찾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해법만을 열심히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고 해법만을 배우는데요. 창의적 아이들은 잘 따라 하지 못해요. - p.g. 60
한국의 교육, 수능
이 포스팅을 쓰는 날짜를 기준으로 어제는 2024 수능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이라는 단어가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짜릿함을. 누군가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아쉬움을. 누군가에게는 열정의 흔적을. 그리고 저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수능이 많은 사람에게 많은 의미를 가지는 데는 대한민국 교육 구조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교육은 수능을 위해서 모든 게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한 수능이 삶을 살면서, 혹은 대학 공부를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러한 의문은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냥 저희는 의문만 던질 뿐, 깊게 고민을 하지는 않지요. 그러다 이번 책 최재천 교수님의 공부를 읽다 보면, 한국의 교육 구조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생각에 빠지게끔 만듭니다. 수능의 의미부터 우리가 아이들의 시간을 뺐을 권리는 있는 것인지. 그리고 공부라는 건 정말 무엇일까. 그러한 고민들을 계속하게끔 만드는 책이 바로 최재천 교수님의 공부라는 책이었습니다.
탄탄한 기초에 대한 두려움
가끔 그러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내 일에서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은데, 가끔은 기본이 탄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 기본부터 다시 차근차근 제대로 쌓았더라면, 지금의 나와 다를까라는 환상을 품게 됩니다. 만화를 봐도, 영화를 봐도, 그리고 각 자신의 분야의 전문가들의 얘기를 봐도. 다들 탄탄한 기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처음부터 차근차근 쌓아 오를 생각에 막막함과 초기에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한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부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대한 학자들이 벽돌을 착착 쌓아가듯 빈틈없이 공부하셨을까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학문하면 생애에 못 끝냅니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들은 어느 단계까진 도달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대가들과 조금 깊이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데, 대가인데 이런 것도 모르나 싶을 만큼 그분들에게도 구멍이 있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있다고 봅니다. 대가는 능력이 출중해서 하나씩 모두 쌓아가며 지금의 자리로 올라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도 꼭 완벽하지는 않다는 제 나름의 확신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공부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한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 p.g. 82
이 내용을 보다 보면 저절로 안도감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기본기가 아니구나 하고 말이죠. 그보다 제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부족한 기본기 부분 중 중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요. 다시 처음부터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밑을 보강하면서 위로 계속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획 독서
최재천 교수님의 독서에 대한 생각은 처음에 유튜브를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장기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죠. 바로 고전 문학 100권 읽기입니다.
[장기 독서 프로젝트] 세계고전문학 100권을 읽어 보자
유튜브 영상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얼마 전에 유튜브 영상 하나를 굉장히 인상 깊게 시청했다. 바로 최재천 교수님이 독서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나는 주변에서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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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독서는 일처럼 해야 하며, 치밀하게 알지 못하는 분야를 공략하는 식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처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가 내 지식의 영토에 들어오게 되고, 다른 분야를 보면 서로 연결된다고 하죠. 저도 어느 순간체계 없이 독서를 하다 보니 남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한 분야의 책을 100권 읽으면 조금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해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세 가지 내용
#1
지금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솔직히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가 지금처럼 빼앗아도 될까?’ 자주 의문을 가져요. 저는 어른들이 그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인권 문제라고 보는데요. 청소년 시절에는 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할까요?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기성세대가 청소년에게 ‘삶을 접고 공부만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압박하는 장치가 됐습니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고, 모두가 삶을 즐기면서 자라나도록 길을 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교육하고 공부하는지를 숙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2
저도 제 글을 써놓고 읽습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어딘가 숨쉬기가 좀 불편하면 그 문장을 뜯어고쳐요. 물 흐르듯이 흘러갈 때까지요. 1주일 전에 탈고한 뒤 3~4일간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한 50번을 고칩니다. 읽고 고치고 또 읽고 고치고 저장해요. 저녁때 다른 일을 하기 전에 모니터에 글을 띄워 소리 내어 읽으면서, 불편한 문장을 또 고치고 저장해둡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읽으면서 또 고쳐요. 읽어줄 만한 글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하는 겁니다.
#3
동물 세계에는 선생님이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거기 있고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저는 우리가 약간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먼저 가르치려고 덤벼들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일종의 촉진자가 되어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엄마 침팬지가 새끼가 실패하는 것을 모르지 않아요. 관찰해보면 계속된 실패를 보는 엄마 침팬지의 표정이 착잡합니다. 마치 ‘붙들고 가르쳐봐?’ 이런 고뇌를 하는 듯해요. 사실은 아니겠죠. 관찰하는 저의 감정이 이입됐을 텐데요. 엄마 침팬지는 실패하는 새끼 옆에서 자기 열매만 계속 깨 먹고 있습니다. 가끔은 새끼가 엄마 침팬지 걸 뺏어 먹어요. 뺏기면 할 수 없지만 ‘배고프지? 엄마가 까줄게’ 그러지는 않습니다. 새끼는 배고프니까 어떻게든 기술을 익혀서 먹으려고 엄마 침팬지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겠죠. 마침내 자기가 혼자서 탁! 깨 먹는 순간이 오는 거예요.
우리는 아이를 너무 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것 아닐까? 침팬지가 배우듯이 몸으로 익히면 긴 인생에 훨씬 더 강력한 학습이 될 텐데, 급하게 욱여넣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에게 말로 하면 잊을 것이고, 가르쳐주면 기억할 것이며, 참여하게 하면 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지요.
책에서 가져갈 한 가지
"기본이 중요하지만 완벽히 탄탄한 기본이란 거의 없다.
결국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고 배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평점 ( ★★★★ )
책이 인터뷰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최재천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책입니다. 그래서 가독성이 굉장히 훌륭하죠. 이는 최재천 교수님이 워낙 글을 잘 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을 왜 공부라고 했을까? 저는 교육과 관련된 책이 아니라 최재천 교수님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리고 공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좀 더 깊게 설명해 주는 책일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보고 처음에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만 만약 공부에 대한 측면만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 책이 생각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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